'분당이 있기에 존재하고 분당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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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2-04-09 00:28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분당을 무소속 7번 한창구 후보의 딸 한경진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31년의 공직 생활 중 대부분을 분당과 성남을 위해 일을 하셨고
분당·수정·중원 성남3개 구청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17년을 분당에서 살았습니다.
저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분당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저에게 분당은 포근한 엄마 품 같은 곳입니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19대 국회의원선거 분당을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주민을 위해 공무원으로 일하셨던 아버지께서 이번에 국회의원에 출마하신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가 전쟁처럼 치열하고 상처를 받기 쉬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을 잘 알기에 저는 곧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고위직에 있었으니 부유하게 사는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오빠와 저까지 총 다섯 식구를 아버지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시기에는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힘이 들었습니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신문과 우유배달을 시작한 어머니를 오빠와 저도 초등학교부터 도와드렸습니다.
이후로도 직장에서 모함 때문에 아버지의 공무원생활이 위기에 처해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할 때는 호떡과 어묵장사까지 해가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오빠는 중학생 때 반 친구들이 장사하는 곳 앞을 지나가자 창피해 숨었다가 어머니께 크게 혼이 났습니다. “네가 나쁜 짓을 했니? 왜 숨는 거니? 땀 흘려서 정직하게 번 돈은 창피한 게 아니야.”
그래서 오빠와 저는 그때 돈의 가치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돈 500원을 벌기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반죽도 해야 하고, 호떡소를 만들어야 하고,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께 친절하게 인사하고 감사하다고 하는 것까지...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가슴을 짓누르는 심리적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항상 성남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복귀한 후에도 주말에도 평일처럼 매일 일만 하셨습니다.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까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도 걱정했지만 저에게는 직장과 집에서도 일만 하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아빠였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일만 하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 19살에 미스코리아를 나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반대하셨습니다,
주위 분들이 본선에서 당선되려면 유명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소개해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래, 네가 원하는 길이니까 남의 힘을 빌리기 전에 네 스스로의 힘으로 한번 해 보거라.” 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역시 우리 아버지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명 미용실의 지도 없이 사촌언니인 유하영의 조언과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2004 미스코리아 선’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소외자를 위한 봉사활동 위주로 활동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은 없었습니다. 항상 남들만큼 지원해 주지 않는 아버지가 조금은 서운했지만, 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믿어주신 아버지가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화목하기만 하던 우리 집은 작년 재보궐 선거 즈음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버지는 선거 때문에 바쁘게 다니시다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 간신히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시골에서 대학에 가려고 올라온 청년 때 이후로 30년 넘게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손과 발을 주물러 주시며 이야기 나누시던 아버지께서 더 효도를 못 해 드렸다는 마음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럼에도 3일장 후에 바로 선거에 다시 전념해야 했고, 그로 인해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꼭 국회의원이 되도록 도와드릴게요. 아빠’ 그 이후 저와 오빠는 아버지의 일이라면 제 할 일을 제쳐놓고서 더 열심히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딛고, 올해 선거에 아버지께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셨습니다.
저는 “공직자가 힘들면 주민이 편하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듣고, 분당에 대해 우리 아버지보다 잘 알고, 사랑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힘든 길이라도 주민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시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 일이 끝나면 바로 와서 도와드리거나 주말에는 종일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그동안 아끼며 사랑해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분들께서 반갑게 맞아주셔서 오늘도 거리로 주민분들께 인사드리러 나섰습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와 우리 가족 그리고 도와주시는 분들은 분당주민 한 분이라도 더 만나서 아버지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저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뛰려고 합니다.
주민 여러분께서 아버지와 저의 손을 잡고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당이 있기에 존재하고 분당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 아버지,
미련하게 한길만 고집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아 때로는 손해 볼 때도 많은 우리 아버지,
소처럼 우직하기에 저에게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소처럼 우직하기에 분당주민께는 최고의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분당주민 여러분, 7번 한창구를 선택해주세요.
아버지의 딸로서, 분당을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국회의원이 될 사람은 배경이 아닌 사람의 본질과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저의 아버지 한창구를 꼭 지켜주세요.
2012년 4월 8일
분당을 7번 한창구 후보의 딸 한경진 올림.
김영철 chul520@hanmail.net